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수 있도록
패션 에디터 서지현
“ 그녀의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뭔지 알아요? ”
지난 겨울 쇼룸을 찾아온 그녀가 낯설어 공통의 지인에게 물었더니 갑자기 아이디를 읽어 보라고 한다.
그녀의 아이디는 @sonmokhogang 패션 액세서리에 관한 관심을 보여주기에 ‘손목호강’ 보다 직설적인 아이디가 있을까?
럭셔리 브랜드들이 가득한 백화점 명품관, 매거진 패션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그녀와 한남동 사잇길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1. 이미지로 모든것을 전달하는 시대. 정기적으로 럭셔리 브랜드들의 화보를 진행하고 있다.
매번 스토리가 있는 컷들이 인상적인데, 작업에 영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매달 한두개, 혹은 더 많은 수의 화보를 짧은 기간 내에 다발적으로 진행한다. 동시에 클라이언트인 브랜드와 의견을 조율하는 게 내 일이다.
장소와 규모가 크거나 긴 시간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하는 화보는 구현에 한계가 있고, 따라서 심오하고 고차원적인 개념으로부터 화보의 영감을 얻기는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화보로 자아실현은 불가능하다는 말 ㅎㅎ)
그래서 찾은 방법은 그때 그때의 마음가짐, 시류에서 영감을 얻는 것, 그로 하여금 보는 이들에게 공감을 이끄는 것이다. 가령 긴 팬데믹 자체가 화보의 영감이 되었고, 그래서 다양한 ‘재택’ 테마의 화보를 찍을 수 있었다. 팬데믹이 장기화되자 최근엔 ‘그럼에도 밝고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자는 마음가짐이 들었고, 그 생각을 발전시켜 '집마당 가드닝' 환하게 웃는 얼굴로 가득찬 ‘홈트레이닝’ 테마등의 화보를 찍었다.
2.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추운 날 추운 데서, 더운 날 더운 데서 찍은 화보, 강아지랑 찍은 하이주얼리 화보, 취객들과 실랑이하던 새벽의 한강 화보…
화보는 모두 생생하게 기억나 딱 하나만 꼽을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최근에 썼던 ‘시크릿 워치’ 칼럼이 기억에 남는다. 워치와 하이주얼리 분야에 관심이 많아 최근까지 많은 칼럼과 화보를 기획했는데, 이 분야에 빠지게 된 계기가 시크릿 워치였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시크릿 워치에 관한 글을 쓰게 됐고, 덕분에 얕은 공부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전하고픈 메시지를 칼럼 말미에 발산(!)해서 뿌듯했다
3. 10년차를 바라보는 직업인의 시점에서, 일적으로, 사적으로 깨달은 바가 있는지?
초연함. 열정으로 가득했던 초년생의 시절을 지나 9년차에 접어들며 얻게 된 마음가짐이다. 어떤 일이 와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해내리라’는 능력(?)이 생겼다.
시간이 해결해준 능력이다. 물론 일도 잘 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모든 일을 다 잘 하고 싶어서 고투하는 동안 속을 많이 버렸었다. 잘 나가는 사람과 비교 하고, 갖지 못한 것에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러다 보니 매번 아프기 일쑤. 그 지옥에서 나를 꺼내 준 건 요가다. 스스로에게 맞춘 호흡을 따라 천천히 내 몸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렇게 태어나서 나고 자란, 이렇게 살다 갈 나라는 존재 자체를 ‘긍정’하게 됐다. 타인은 내 인생 에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몸을 쓰니 알겠더라.
4. 최근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은?
하도 물건을 많이 사서 세가지나 된다.
1. 작년 초에 산 자동차.
만족도 최상이다. 예상과 달리 전국 방방곳곳을 쏘다니진 않지만 길고 지겹고 예민하던 출퇴근 길에서 나를 지켜준 것만으로 충분하다.
2. 부디 무드라의 요가 팬츠.
이 팬츠를 산 이후로는 레깅스를 못 입는다. 무릎의 방향이나 근육의 쓰임새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레깅스의 기능성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지금의 나에겐 얼마나 올바르게 아사나를 수행하는가보다 편안함이 우선이다.
3. 수별의 Kiss of the snake 진주 네크리스.
길이가 충분히 길어서 클로저를 여닫지 않고 쓱쓱 찰 수 있는 길이라 일단 좋다. 진주가 작아서 그저 우아해 보이기만 하지 않는다. 룩을 방해하지 않고 티셔츠건 원피스건 두루두루 어울린다는 말. 자타공인 스네이크 러버인 나에게 뱀인듯, 도마뱀인듯? 싶은 신비한 모양새의 클로저는 볼 때 마다 호기심을 자아내며, 이게 가능한가 싶은 놀라운 완성도는 늘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하니까
Kiss of the snake pearl necklace Poppy necklace
5.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패션 에디터를 꿈꾼다는 것을 아는지? 패션은 매혹적이지만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어쩔 수 없이 가장 빠져드는 분야가 아닌가.
가장 좋은 것을 마주하는 게 일상일텐데, 그 세계와 삶의 밸런스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궁금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스위치를 끄고 켜듯 퇴근 후나 주말에는 그 화려한 세계로부터 철저히 나를 빼 내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거대한 SNS 세상에 살면서 그러기가 쉬운가. 또 ‘예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는 오죽 어렵나? 결국은 아름다운 물건이건 화려한 이벤트건, 사람들이건. 그 모든 것 들은 내가 밀어낼 수 없는, 나랑 함께 살아갈 일부들이더라. 이제는 퇴근 후에도 메일 박스를 열어 보고, 주말에도 인스타그램 뒤적이며 예쁜 것들을 구경한다.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경계하되 적당히 아름다운 만큼, 적당히 즐거운 만큼만 찾아보고 다시 일상에 전념하는 밸런스를 찾아가는 중이다
그녀의 밸런스를 말해주는 듯한 디테일.
6. 에디터로써 일하며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을 대했다. 명품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명품이란 가격에 관계 없이 나에게 대체 불가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 만족감은 내게 부족한 어 떤 무언가를 채워줄 때 오는 것이다. ‘어떤 무언가’는 심미, 허영심, 또는 빈 자리를 채워주는 상징이 될 수도 있고. 그리하여 매우 상대적이면서 주관적인 가치를 지닌 것. 나는 아무튼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으로 시작하는 것이 명품이라고생각하지 않는다. 일년을 쓰고 질리고 만들, 그 물건이 당시의 내게 그만한 만족을 채워줬다면 그게 명품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것이 비싸긴 하다)
7. 인스타그램 아이디로 당신을 알게 됐다고 할만큼 피드를 가득 채운 주얼리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
옷도 가방도 아닌 주얼리를 유독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면? 주얼리가 대체 뭐기에?
룩의 완성도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주얼리는 옷이나 신발처럼 없으면 외출할 수 없는 필수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주얼리를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차이는 무척 크다.
특히 패션 화보를 찍을 때 주얼리는 정말 중요하다. 여건상 같은 옷 한 벌을 여러 매체가 돌려가며 찍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스타일링은 한정된 경우도 많다. 조금이라도 다른 매체와 달리 보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얼리매칭 뿐! 주얼리는 아무 것도 아닌 옷차림도 빛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아무리 화려한 업계에 있다 한들 매번 파티 룩을 입을 순 없지 않는가? 실제로 티셔츠에 ‘쪼리’를 즐겨 신는데, 이 ‘츄리닝’ 바람에 차곡차곡 정성스럽게 주얼리를 매치하면 ‘일부러 이렇게 입은 듯한’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쉽게 말해 이도 저도 다 귀찮은 날 커다란 터키석 반지 하나 툭 걸치면 “내가 막 사는 게 아니라 다 생각이 있는 거다”라고 반지가 대신 말해준달까?! (일동 빵 터지는 웃음)
정리하자면 주얼리는 가장 쉽게 ‘나다움’을 표현해주는 요소.
10대, 20대의 유행이 있는 것 처럼 30-40대 여성에게도 그들만의 코드가 있다. 정확히는 그 세대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인 옷차림의 룰.
특히 내 나이 또래 여성들은 직장 때문에 한정된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은 주얼리 정도는 본인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주얼리 하나 더해서 내가 남과 달리 보이는 건 스스로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
Kiss of the snake bracelet Lips bracelet
8. 여러 브랜드들 중에 수별을 좋아하는 이유.
앞서 언급한 내가 생각하는 명품의 기준에 부합한다.
‘야매’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내 눈을 충족하고 넘어서는 제품의 완성도, 흔하지 않은 모티브와 이를 구현해낸 디자인, 그리하여 어디서든 볼 수 없는, 오직 이 곳에만 존재하는 제품인데 만족할만 한 가격 접근성까지 갖춰서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알아갈수록 더 좋아진 이유는 수별만이 가진 문화 때문. 수별의 주얼리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게끔 만들고, 계속해서 그 다음을 지켜보게 만든다. 그에 답하듯 수별은 매번 고개가 끄덕여지는 주얼리를
만들어내고, 어느새 친구가 된 고객들에게 ‘우리’만의 유대를 이어간다. 누가 사갔고, 누가 파는지 알 수 없는 브랜드와 물건들의 홍수 속에서 수별은 홀로 빛나는 보석이다.
9. Gee, 더 잘 하도록.. 덕후로 매니아로 같은 업계인으로 책임감을 갖게 된다.
공통적인 질문을 항상 묻고 궁금해 한다. 당신에게 중요한 세가지
노동, 쉼, 그리고 아름다운 것.
일을 해야 쉬는 날의 소중함을 안다. 반대로 쉼이 있기에 노동은 그 고난함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과 쉼이 톱니처럼 맞물림으로써 내 인생이 굴러간다. 아름다운 것들은 일에서도, 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매번 혼재한 게 아니라 가끔 찾아오기에 귀하다. 힘에 부친 일을 견디게 해주는 이온음료 같은 존재기도하고, 쉴 때 찾아온 아름다운 존재는 두고두고 추억할 거리가 된다.
가장 럭셔리의 중심에서 매일 아름다운 제품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라이프는 어떨까? 흔히 예쁘다는 표현을 넘어서고 싶을때 우리는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쓴다.
[: 시각적인 황홀함을 선사해 주거나. 어떤 사물이나 시선에 혹하여 마음이 달뜨는것] 그러나 그 순간의 아름다움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지속시킬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친 며칠뒤 ' 저 요가 지도자 과정에 등록했어요! ' 뜬금없지만 그럴줄~? 하고 예상된 카톡이 갑자기 화면에 떳다.
@sonmokhogang은 예전에 비해 좋아하는것에 너무 매몰되지 않기위해 노력한다지만, 우리가 아는 그녀는 그 아름답고 황홀한 마음이 지속될수 있도록,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먼저 손내밀줄 아는 용기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당신이 '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수 있도록 , 달뜨던 순간의 아름다움이 더욱 견고하게 차오를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